폴린 유대인 역사 박물관은 바르샤바 다크 투어의 필수 코스 중 하나로, 유대인들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들이 겪은 고통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전시는 압권. * 정성껏 쓴 포스팅이니, 도움이 되셨다면 댓글 하나라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뿌듯하고 싶어오.
* 폴란드 여행 계획 총정리!
폴란드 여행 계획을 세워 보자
폴란드를 여행하기로 마음 먹은 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와 자코파네 때문이었다. 지난해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고 강제수용소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는데, 올해 리얼 페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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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다크 투어 총정리. 폴란드 다크 투어리즘을 준비하고 계신다면 참고하시길!
폴란드 다크 투어 완벽 정리, 영화 '리얼 페인' 촬영지를 따라가보자
영화 '리얼 페인'을 보고 나니 폴란드 여행을 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다크 투어리즘, 홀로코스트 투어겠다. 영화를 본 직후 바로 다음날 버스표를 끊었고 리얼 페인에 등장하는 장소를 정리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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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샤바 여행 가이드
폴란드 바르샤바 여행 가이드, 필수 코스와 추천 명소 총정리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Warsaw에 도착했나. 하루 동안 바르샤바 일일 투어를 하며 정리한, 유서 깊은 구시가지부터 현대적인 랜드마크까지 꼭 가봐야 할 명소들을 소개한다. 3월 초 여행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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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치, 가는 법
버스 이용 시 180번을 타고 Nalewki-Muzuem 정류장에서 하차. 바르샤바 봉기 기념비에서 도보 10분, 바르샤바 올드 타운에서 도보 20분 내에 위치해있어 도보 이동도 충분히 가능! 주소는 Ludwika Zamenhofa, 00-153 Warszawa, Poland.
2. 폴린 유대인 역사 박물관 POLIN Museum of the History of Polish Jews
소지품 검사 후 입장할 수 있다.
폴린 유대인 역사 박물관 건물은 핀란드 출신 건축가 라이너 마흘라마키 Rainer Mahlamäki 가 설계한 것으로, 2016년 유럽 박물관상을 타기도 했다고.
박물관 로비는 "거대한 균열 Crack" 형태를 띄는데, 이는 홍해가 갈라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유대 민족의 고난과 생존,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상징한단다. 또 외관은 직선적이고 단단하지만, 내부는 유동적인 곡선 구조를 가지고 있어 과거의 단절과 현재의 회복을 연결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천장 곡이 너무 아름다워서 찍어뒀는데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매표소에서 표를 산 후, 바로 옆에 위치한 입구로 들어가주면 된다. 성인은 45쯔워티, 학생은 38쯔워티.
* 상설 전시 갤러리
G1 숲 FOREST - 폴란드 초기 정착 이야기, 폴린 Polin은 히브리어로 "여기서 쉬어라"는 뜻
G2 첫만남 FIRST ENCOUNTERS (960-1500) - 폴란드에서 유대인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는 과정
G3 유대인의 낙원 PARADISUS IUDAEORUM (1569-1648) - 유대인이 번영했던 시대
G4 유대인 마을 THE JEWISH TOWN (1648-1772) - 유대인 일상과 종교적 삶을 조명
G5 근대와의 만남 ENCOUNTERS WITH MODERNITY (1772-1914) - 폴란드 분할 이후 유대인 사회의 변화
G6 유대인 거리 ON THE JEWISH STREET (1918-1939) - 유럽 전역에 반유대주의 심화.
G7 홀로코스트 HOLOCAUST (1939–1945) 나치 점령기 폴란드 유대인 게토 생활, 수용소 이송, 학살 과정과 저항 활동
G8 전후 시대 POSTWAR YEARS (1944–today) 전쟁 후 폴란드 유대인들의 생존과 재건 노력
전시가 워낙 방대하여, 꼼꼼하게 다 보려면 반나절은 필요하다. 바르샤바 여행 일정에 폴린 박물관을 넣었다면, 꼭 시간 분배를 잘 하자. 시간이 없다면 반유대주의가 시작되는 시점인 6,7,8 위주로 보는 걸 추천한다.
이 포스팅에서는 모든 전시를 다룰 수 없으니,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갤러리 6, 7, 8만 소개하겠다. *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전시 일부를 조금 해석해두었으니, 관람 전에 한 번 훑고 가시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갤러리 6 '유대인 거리'에서는 제2차 폴란드 공화국 시기 유대인의 정치·문화적 발전과 함께, 점차 확산된 반유대주의를 다루고 있다. "이로써 유대인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가 시작되었다. Thus began one of the darkest periods in Jewish history"
유대인 거리 재현. 당시 유대인이 운영했던 서점, 빵집, 재봉소 등이 당시 간판과 함께 복원되어 있다.
반유대주의 전시 구간. 유대인 상점 불매 운동 포스터, 유대인 회당 폭력 사태 등을 다룬 기사들이 전시되어 있다. 유대인을 '외부인'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반유대주의가 점차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갤러리 7, 8부터 본격적으로 홀로코스트 전시가 시작된다. 입구에는 "홀로코스트 전시관을 건너뛰고 싶다면 돌아가거나 직원에게 문의하세요. If you wish to skip the Holocaust Gallery, turn back or ask the staff"라는 안내문이 있었는데, 관련 내용이 끔찍한만큼 트라우마가 있거나 보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듯했다.
"유대인 대량 학살이 시작되다 The mass extermination of Jew begins"
나치 독일군이 유대인에게 부과하는 규제, 명령, 노동, 그리고 강제 이주에 관한 성명서들. "유대인 주민들에게 보내는 성명서 ODEZWA do ludności żydowskiej"
바르샤바 게토 전시 구간. 벽에 적힌 문구들은 바르샤바 게토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경제적 붕괴, 극심한 빈곤, 그리고 의료 시스템 마비의 참상을 증언하는 기록들이다. " 새로운 거대한 시장 - 유대인들은 거리에서 자신의 모든 걸 팔아야했다. 셔츠, 속옷, 정장, 시트, 신발. 천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거래를 하고 있었다. a new enormous bazaar – there on the street Jewish Warsaw was for sale … shirts, towels, underwear, suits, sheets, shoes … There are certainly a thousand people standing around trading in it."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 봉기 Warsaw Ghetto Uprising 전시 구간. 1940년 10월, 나치 독일은 바르샤바의 유대인들을 강제 거주 지역인 게토로 몰아넣었고, 이후 이 지역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강제수용소로 보내 학살하기 시작했다. 1943년 4월, 게토 지역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은 끝까지 저항하기 위해 봉기를 일으켰지만, 결국 나치는 게토를 초토화시키고 수만 명을 학살했다.
"게토가 불타고 있다. 폭발이 계속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태연하게 자신의 일을 본다... 총성과 폭발음이 들려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The ghetto is burning. continuous explostions. Yet people calmly go about their business... No one even looks around on hearing the gunfire and the explosions." 총성과 폭발이 계속되는 가운데에도 일상을 이어가야만 했던 사람들의 심정이란.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
반제 회의 Wannsee Conference 전시 구간. 1942년 1월 20일, 반제 회의에서 나치는 "유대인 문제의 최종 해결책 Final Solution to the Jewish Question"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했다.
"반제 회의는 유대인 학살을 결정하는 회의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학살을 체계적으로 실행하는 방법을 논의한 자리였다. 이미 6개월 전부터 나치의 특수부대 '아인자츠그루펜 Einsatzgruppen'은 동유럽에서 대량 학살을 진행하고 있었다. 회의에서는 대량 학살의 기술적·행정적 절차 및 법적 문제에 대해 논의했으며, 이에 따라 제3제국의 유대인들은 최초의 가스 학살 수용소인 Chełmno, Kulmhof 로 강제 이송되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기록. "1943년, 독일군은 카우프 슈파이구타트 유대교 회당를 (강제수용소 이동 전) 유대인 11,000명을 모으는 장소로 사용했다. 유대인들은 펜이나 손톱으로 벽에 마지막 말을 남겼다. In 1943 the Germans utilised the Kauf Spaigutat synagogue as a gathering point for the 11,000 Jews awaiting death. On its walls they scratched their last words with pens or nails."
"이것은 내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쓰는 글입니다. 혹시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면, 부디 우리 형제들의 운명을 기억해주십시오. 스무 살에 죽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평온합니다. I write for the last time before my death. If anyone should survive, let him remember our brothers' fate. I am strangely calm, although it is difficult to die at the age of twenty"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 전시 구간.
여기까지도 마음이 너무 힘들었는데 아우슈비츠라니. 마음을 가다듬고 후.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 수용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폴란드 오시비엥침 Oświęcim에 세운 최대 규모의 강제 수용소이다. 홀로코스트의 상징적인 장소로,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이곳에서 약 110만 명의 사람들이 학살당했다.
가스실 조감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유대인들의) 도착과 탈의 과정에서 최대한의 평온과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 아우슈비츠 초대 소장, 루돌프 회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등장하는 그 "회스"가 맞다.
독일 군은 유대인 선별 작업대에서 가스실로 향하는 과정까지 학살의 전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으며, 그들이 남긴 공식 문서에는 당시 촬영된 사진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사진 자료들은 나치의 범죄를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이자, 희생자들을 기억하는데 있어 중요한 기록이 되었다.
하 애기들 사진 보면 마음 찢어져.
수감자들이 가스실로 들어가기 직전에 제시된 경고문. 수감자들이 저항 없이 가스실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나치는 가스실을 샤워실로 위장하고 독가스 살포를 '흡입 receiving inhalant'이라는 표현으로 숨겼다. "주의! 모든 의류는 여기에 남겨야 합니다. 돈, 귀중품, 서류 및 신발을 제외하고 모든 소지품은 남겨야 합니다. 돈, 귀중품 및 서류는 창구에 맡기고 신발은 묶어서 지정된 장소에 남겨야 합니다. 완전히 옷을 벗은 후 샤워 및 흡입을 위해 함께 가십시오."
"공포가 모두의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갇힌 사람들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이 잠긴 문 안으로 스스로 들어온 자신들의 순진함을 깨달았다. 천국을 향해 울려 퍼지는 그들의 목소리는, 그들이 마지막으로 영혼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들은 완전히 무고한 이들에게 가해진 가장 극심한 부당함에 맞서, 마지막이자 가장 절박한 항의의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가스가 폐로 스며들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서로의 몸 위로 쓰러져 5~6겹이 쌓이며 1미터 높이의 더미가 되었다. 어머니들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그대로 굳어버렸고, 남편과 아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껴안은 채 죽어갔다." 엉엉.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이랑 똑같잖아. 엉엉.
"내 어린 시절과 젊은 날들의 흔적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아. 심지어 돌아가신 아버지의 무덤조차 없다네. Nothing Absolutely nothing remains of my childhood, of my youth, not even the grave of my dead father"
홀로코스트 동안 폴란드, 소련, 헝가리,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에서 학살된 유대인 수. 그 중에서도 폴란드 유대인이 가장 많이 학살 당했다.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 당했으며, 그중 폴란드 유대인은 300만 명으로, 이는 당시 폴란드 유대인 인구의 90%에 해당한다."
1944년, 미국 전쟁 난민 위원회 U.S. War Refugee Board 는 "독일 절멸 수용소 -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이는 아우슈비츠의 참혹한 실상을 알린 최초의 상세한 보고서 중 하나였다. 이 보고서는 2년 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갇혀 있던 루돌프 브르바와 알프레트 베츨러가 1944년 4월 탈출 후 증언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유럽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던 유대인 학살의 실태를 폭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폴란드 진짜 불쌍한 게 나치 독일 점령이 끝나자마자, 해방이 아니라 소련의 지배가 시작됨. 우리나라 마냥 지리적으로 최악. 좌 독일 우 소련. 에바야 진짜.
전시 마지막 공간. 홀로코스트 이후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수용소에서의 기억, 전쟁 이후의 삶, 정체성, 기억, 그리고 폴란드에서의 유대인 공동체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 갤러리 4인가에 있던 비마 Bimah. 유대교 회당, 시나고그 Synagogu 에서 토라를 낭독하는 단상이다. 벽과 천장에 그려진 문양과 히브리어 문구는 폴란드 지역 유대교 회당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디자인이라고 한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거의 모든 유대인 회당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실제 비마가 아니라 복원된 비마라고.
그림이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걸까. 아시는 분은 댓글 좀 달아주세요.
드디어 나왔다. 밖으로. 와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다. 특히 홀로코스트 전시는 너무 힘들었달까.
힘 없어서 밖에 있는 전시들을 그냥 터덜터덜 훑고 나왔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여기까지 오니 기력 딸려서 대충 쓰는 중. 봐주세요.
그래도 기념품은 사야지? 기념품 샵에서 영롱한 마그넷 하나 샀다.
밖으로 나와 바르샤바 게토 봉기 기념비 한 번 더 봐줬다. 어둠 속에서 보니 왜인지 더 스산하고 엄숙하며서, 강렬한 뭐 그런 느낌. 그럼 좋은 관람 되시길! 후다닥 마무리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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