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시즌 1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것과는 별개로 내 기준 평점 2점을 못 넘기는 작품이다. 그마저도 상업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주는 별점이다.이 평에 어느 정도로 진지하냐면 오징어 게임을 나름 잘 보았다고 평하는 사람과는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진지하게 좋은 작품이었다고 평하는 사람과는 영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을 수준이다. 영화 취향이 안 맞는 수준을 넘어, 시선 자체가 아예 다른 거니까. 아 물론 오징어 게임은 시리즈물이다.
오징어 게임은 3년 전 추석 즈음 릴리즈된 걸로 기억한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 할머니집에서 볼 요량으로 아이패드에 전부 다운받았었다. 내가 아주, 기대를 많이 했다. 티저 영상 때깔이 아주 좋았으니까. 그렇게 오징어 게임을 보았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얕다. 그것도 구리게 얕다. 거대한 사회적 메시지와 자본주의 비판을 표방하지만, 그 실행에 있어 피상적이고 단순한 접근으로 일관한다는 점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뻔한 캐릭터와 뻔한 설정은 또 어떻고. 어그로 끌기와 세트장에 스탯 몰빵하고 다른 부분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연출이라니. 분명 잠재력 있는 작품이었기에 아쉽다.
그나마 첫 화가 가장 낫다. 공유와 딱지 치기는 신선했다. 또 시리즈 특성상 초반은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데, 여기까지는 흥미를 잃지 않았더랬다. 게임장 세트 디자인, 의상, 소품 등도 아주 세련되었고 말이다. 눈이 즐거웠달까. 하지만 첫 화 이후부터 모든 요소가 급격하게 촌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이후 신선했던 장면이 하나 더 있긴 했다. 게임을 중단했던 참가자들이 자의로 돌아오는 장면이 그것이다)
일단 캐릭터 설정부터 하품 나온다. 도박 중독자에 엄마한테만 개지랄하는 주인공 기훈, 아들 먹여 살리려 고군분투하는 착한 엄마, 기훈을 사람 새끼로도 안 보는 전처, 와중에 어른스러운 딸.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가 2000년대 초반에 쓰였다던데 그 시절 캐릭터 전형을 그대로 복붙 했네 아주. 게임장으로 장소 이동 후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다 어디서 본 캐릭터이다. 투자하다 망한 서울대 졸업생, 사람도 죽여본 깡패, 월급 떼이는 순수한 외노자, 의미심장한 할아버지. 캐릭터가 전형적이다 보니 나중에 이어질 스토리도, 결말도 너무 예상이 되지 않나. 하지만 전형적인 캐릭터가 낮은 평점의 이유는 아니다. 전형적인 캐릭터로도 얼마든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으니까.
인물들이 이야기의 필요에 따라 캐릭터성이 변한다. 캐릭터성이 일관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언제나 입체적이고, 변화는 캐릭터를 매력 있게 만들기도 하니까.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서는 맥락이 없다. 그래서 설득력이 없다. 인물들이 겪는 심리적 변화가 그들의 행동과 결정에 충분한 맥락을 제공하지 못해서, 전체 서사의 깊이를 떨어뜨리는 수준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엄마 돈을 죄책감 없이 쌔빌 정도로 비겁하고 이기적인 인물이던 기훈이 어느 순간 인간성을 절대로 잃지 않는 성인군자가 된다. 사람 좋은 웃음 지으며 아이고 영감님 하다가, 구슬치기 하면서 구라 치는 건 이해가 된다. 살아야 하니까. 그러다가 상우 멱살 잡고 네가 사람을 죽였다느니 분노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본인도 이미 사람을 죽였지, 혹은 그 상황에서 상우처럼 하지 않았을까라는 고뇌 혹은 자괴가 함께 있었다면 이해라도 가겠다. 행동의 맥락도 동기도 보이지 않아서 씨발 기훈이 형이 절로 나오더라.
인물은 얼마나 쓸모없이 소비되는가. 게임 참여자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나 게임에서의 결정적 순간들에서 불필요하게 극적이거나 설득력이 부족하다. 특히 여성 캐릭터가 소비되는 방식은 끔찍하리만큼 의미 없다. 한미녀를 보라. 몸까지 팔아가며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던 그녀가 갑자기 덕수를 끌어안고 논개마냥 투신한다. 나는 끝까지는 못 가겠다, 그러니 저 새끼라도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하든가. 혹은 의지로 한 섹스가 아니라, 강간을 당해 게임 내내 복수심을 가지고 있었든가. 그냥 주인공이 아니라서 빌런 하나 데리고 죽여야 했던 거다. 지영은 뭔가. 극 내내 실실 쪼개더니, 뜬금없이 살아서 나갈 이유가 없다며 자애롭게 자살한다. 지영은 강새벽이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더하기 위해 그냥 만들어낸 캐릭터에 불과하다. 강새벽은 또 뭔가. 그녀는 왜 결승을 앞두고 폭파된 유리를 맞고 죽어야 했나. 이거 설명할 수 있는 사람 있다면 10만 원 드리겠다.
게임은 또 얼마나 무의미한가. 데스 게임 장르는 극한의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생존을 위해 경쟁하고, 실패 시 죽음을 맞는 서사를 가진다. 이 장르는 으레 주인공이 주어진 과제를 얼마나 전략적으로 파훼하는지, 경쟁자끼리 얼마나 긴장감 있게 심리전을 치르느냐가 재미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든 누구든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게임은 대부분 운과 힘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파훼법이랄 것도 없다. 달고나는 핥고, 줄다리기는 눕고, 징검다리는 앞사람 민다. 이렇다 보니 주인공을 응원할 요소가 단 하나도 없다. 기훈이 우승해 봤자 드디어!! 따위의 희열감이라곤 눈곱만큼도 생기지 않는다.
모순은 또 얼마나 많은가. 프런트맨은 이곳에서 경쟁은 평등할 거라 말한다. 하지만 평등하지 않다. 어떤 참가자가 반칙을 해도 눈을 감고, 특정 참가자에게 유리하게 조작된다. 한미녀는 달고나 게임에서 라이터를 쓰고, 의사는 장기를 적출하고 게임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물론 이는 주최 측의 모순이지 드라마 자체의 모순이라고 보지 않을 수 있다. 평등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 수도 있고, 그것이 이 드라마의 주제 의식과 맞닿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해석은 아쉽게도 잘 봐주려는 노력에 불과하다. 쉬는 시간 살육 장면을 보라. 그렇게 평등을 외치던 주최 측은 살육을 방관한다. 평등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주제 의식을 말하려면 최소한 주최 측은 그들이 만든 설정을 쳐부수면 안 되지. 설정 안에서의 모순이야 존재할 수 있고, 뒤로 공평을 저해하는 세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설정 자체를 개무시하고, 주최 측이 힘세고 칼 든 놈이 이기는 게임을 승인하는 건 안 되는 거지. 살육 장면을 보는 순간 철학은 무슨, 그 얕음에 골이 띵해지는 경험을 했다. 아 무슨 세렝게티 상태에서의 평등을 말하고 싶었던 건가.
허점은 또 얼마나 많은가. 게임 주최 측 시스템은 아주 치밀해 보이나 허술하다. 처음에만 치밀한 척한다. 그 많은 수의 진행 요원은 어떻게 섭외했으며, 진행 요원들은 어떻게 감정을 배제하고 납치, 감금, 사살, 시신 처리와 같은 일을 하는가. 사이코패스만 섭외하나. 오랜 기간 세뇌라도 시켰다는 설정만 있어도 설득력 있겠다. 또 456명의 사람을 한 날 한 시에 납치하는 거대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집단인데, 사복 경찰 하나 못 잡아낸다. 거기다 경찰이 사람을 계속 죽인다. 그 외에도 개연성 없는 장면 천지다. 오징어 게임 직전 상우가 새벽이를 죽이는 건 허용하고, 기훈이 상우 죽이려는 건 제지 한다. 이게 무슨. 아 결승 둘이서 해야하니까?
그냥 거슬리는 것도 많았다. 외국인 VIP가 등장해서는, 촌스러운 가면을 쓰고 발연기하는 건 도저히 못 봐주겠더라. 대사는 또 얼마나 유치하던지. 69를 뒤집으면 96번이니까 96번에 배팅하겠다고. 거기다 나체 상태로 페인팅한 여자들을 가구처럼 세워두기까지. 늙은 기득권 남성 냄새가 진동하는 연출이라니.
마지막 화는 할 말이 없다. 기훈이 갑작스럽게 시스템에 반항하는 모습은 적잖이 급격하고, 마지막의 반전도 충분히 충격적이지 못하다. 기훈은 사람 다 죽이고 456억 받았으면서, 여전히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 타령. 이럴 거면 게임 중에 시체를 보고 구역질을 하든, 식음을 전폐하든 뭐라도 했어야했다. 식사 시간 딸기 우유나 찾던 기훈의 변화는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오징어 게임 기획자인 오일남은 침대에 누워서 한다는 말이 어린 시절에 놀던 때를 재연하고 싶었단다. 아직도 사람을 믿나 이런 텅 빈 질문이나 던지면서. 결국 재미도 메시지도 뭐 하나 제대로 잡은 게 없다. 재미있게 봤다면 미안한데, 늘 킬링타임용 콘텐츠만 즐겨본 건 아닐까 진지하게 자아성찰해 보자. 아니 안 미안하다.
여기까지가 내 솔직한 생각이다. 본인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좋은 부분을 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좋은 작품을 보고는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진심으로 오징어 게임이라는 작품을 까고 싶어 까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작품을 보다 보니 깔만한 요소가 너무 많은 것이다. 보이는데 어떻게 하나. 이쯤 되면 취향 문제가 아니라, 그냥 작품성이 떨어지는 거다. 치밀도가 떨어지는 거고. 짜임새가 부족한 거다. 디테일이 없다. 거대한 문제의식 가지고 시작했으나 뱀꼬리가 되어버린 때깔 좋은 졸작. 이게 내 결론이다.
+ 오징어 게임이 명작이라는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게임보다 사람에 집중해 좋았단다. 데스 게임 장르가 아니라 드라마 장르라는 거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놀이를 차용한 이유란다. 놀이보다 인물의 서사에 집중하고,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의 감정과 행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이야. 이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 각각 인물의 서사 없었는데? 캐릭터 서사가 너무나 빈약했고, 그래서 인물의 감정 흐름이나 행동이나 선택에 몰입을 할 수 없었다. 덕분에 많은 작품에서 연기력이 좋았던 배우들이, 오징어 게임에서는 연기를 못 하는 배우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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